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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

여름 들판에 핀 꽃, 범부채 이름의 의미와 특징, 종류와 전설

by 꽃달임짱지 2025. 6. 18.

범부채
출처 pixabay

 

 

햇살이 따가운 여름날, 한적한 들녘이나 산기슭에서 조용히 고개를 내민 꽃이 있습니다. 붉은 점무늬가 박힌 주황빛 꽃잎은 마치 호랑이의 무늬처럼 강렬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한없이 차분하고 단정합니다. 바로 범부채(虎耳草, Blackberry lily)입니다. 오늘은 조용히, 그러나 결코 약하지 않은 그 존재감으로 빛나는 범부채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름 속에 담긴 의미 – ‘호랑이 귀를 닮은 부채

‘범부채’라는 이름은 다소 독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범(虎)’은 호랑이, ‘부채’는 扇, 즉 부채 모양의 잎을 의미합니다.
전체적으로는 “호랑이 귀처럼 생긴 부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범부채의 잎은 납작하고 부채 모양이며, 꽃잎에는 주황 바탕에 붉은 점이 박혀 있어 호랑이 무늬를 연상케 합니다. 들판에 피어 있는 작은 꽃 같지만 호랑의 기개를 가진 제법 강인한 꽃입니다.

학명은 Iris domestica이며, 이전에는 Belamcanda chinens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영어권에서는 흔히 Blackberry lily, 즉 ‘블랙베리 백합’이라 불리는데, 꽃이 지고 난 후 생기는 검은 씨앗이 블랙베리와 비슷하게 생긴 것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범부채에 얽힌 전설과 민속 이야기

범부채는 동양에서는 약용식물로도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지만,
그 외관에서 비롯된 독특한 전설도 전해집니다.

옛날, 깊은 산속에서 호랑이와 사람이 공존하던 시대에, 어느 노인이 호랑이에게 물릴 뻔한 어린아이를 구하려다 그만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 노인의 묘 옆에서 핀 꽃이 바로 범부채였고, 사람들은 그 꽃을 ‘호랑이의 마음을 녹인 꽃’이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이 전설은 범부채의 꽃말과도 연결됩니다. 범부채의 꽃말은 ‘은혜’, ‘감사’, ‘굳건한 우정’ 등입니다.
꽃이 자주 눈에 띄지 않지만 한 번 피면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조용하지만 진한 감정이 담긴 꽃으로 여겨졌습니다.

 

 

 


범부채의 역사 – 약초이자 정원의 꽃

범부채는 중국 남부와 동아시아 지역이 원산지이며,
우리나라에는 고려 혹은 조선 시대 약용식물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방에서는 이 식물의 뿌리를 ‘사간(射干)’이라 부르며,
기관지염, 편도선염, 인후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여 오랫동안 약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후 조경용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사랑하던 조선 후기 양반가의 정원이나 사찰 주변, 묘역 근처에 자주 심기 시작했습니다.

 

 


범부채의 생태적 특징 – 여름의 은근한 꽃

범부채는 다년생 초본 식물로, 높이는 60~100cm 정도까지 자랍니다.
잎은 칼날처럼 길쭉하며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고,
줄기 끝에서 주황색 바탕에 붉은 점이 박힌 별 모양의 꽃이 피어납니다.

개화 시기
보통 7월에서 8월, 본격적인 여름에 꽃을 피우며,

꽃 한 송이의 수명은 하루에 불과하지만,

하루하루 계속 새로운 꽃이 피어나면서 약 한 달간 피어있는 듯한 효과를 줍니다.

씨앗
꽃이 지고 나면, 씨방이 갈라지며 검은 구슬 같은 씨앗이 드러납니다.

이 모습이 마치 블랙베리와 비슷해 영어 이름이 붙여졌고,

씨앗은 건조시켜 약용으로 쓰거나 관상용으로도 활용됩니다.

 

 

 

 


범부채는 크게 다음과 같은 종류로 나뉩니다:

- 일반 범부채 (Iris domestica)
가장 널리 알려진 품종으로, 주황 바탕에 붉은 반점이 특징입니다.

- 노란 범부채
노란 바탕에 붉은 점이 없는 변이종으로, 다소 희귀합니다.

- 교잡종 범부채
원예적으로 다른 붓꽃류와 교배되어 다양한 색상의 품종이 개발되었습니다.

 

 

 

 

 

 


<관리 팁>

 


햇볕이 잘 들고 배수가 좋은 곳에서 잘 자랍니다.

건조에도 비교적 강한 편이라, 도심 정원이나 야외 조경용으로 매우 적합합니다.

겨울에는 지상부가 말라 없어지지만, 뿌리가 살아 있어 다음 해 다시 꽃을 피웁니다.

특별한 병충해도 거의 없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식물입니다.


범부채는 소리 없이 피어나고, 하루만 피었다 지는 꽃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 삶 속에서 스쳐 가는 소중한 인연이나 순간들을 닮았습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누구보다 강하고 깊은 마음을 가진 사람.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
범부채는 그런 사람들의 성품과 꼭 닮아 있습니다.

또한, 범부채는 화려한 표현 없이도 깊은 울림을 주는 꽃입니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조용한 존재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결코 작지 않다는 위로를 전하는 식물입니다.

모두에게 시끌벅적한 여름날이지만 누군가에게 외로울 수도 있는 그 시간이

범부채는 조용히 위로가 되어줍니다. 


요란하지도, 주목받지도 않는 들꽃 중 하나인 범부채.
하지만 그 안에는 조용한 우아함, 슬기로운 생존력, 그리고
스쳐간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깊은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하루, 조용히 피어난 범부채 한 송이를 바라보며
우리 삶의 의미 있는 순간들을 떠올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하루를 따뜻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꽃이 주는 힘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