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봉선화, 이름 속에 담긴 의미와 꽃의 특징
‘봉선화’는 한자로 鳳仙花라 쓰며, 봉황 봉(鳳), 신선 선(仙), 꽃 화(꽃)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 이름에는 고결하고 신령한 이미지가 담겨 있는데, 예부터 이 꽃이 신선들이 머무는 곳이나 봉황이 깃드는 신비로운 장소에서 핀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신비롭고 고귀한 기운이 느껴지죠.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 ‘봉숭아’는 봉선화의 순우리말 버전으로, ‘봉선화’보다 정겹고 친근한 느낌을 줍니다. 지방에 따라 ‘손톱꽃’, ‘뽕숭아’라고도 부르며, 이는 이 꽃이 손톱에 물을 들이는 데 사용되어 온 전통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릴 적 다들 많이 했던 기억이 있을테지요.
봉선화는 6월부터 9월 사이 여름에 피는 한해살이풀로, 보통 30~60cm 정도 자라며 꽃은 분홍, 붉은색, 주황색 등 다양합니다. 줄기는 연하고 수분이 많으며, 꽃은 줄기를 따라 다닥다닥 핍니다. 특히 열매는 익으면 작은 충격에도 톡하고 터지며 씨앗을 사방으로 튕기는데, 이 모습에서 봉선화는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독특한 꽃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봉선화 씨앗이 맺히면 그 씨앗 터트리는게 재밌어서 손가락으로 톡 터트리며 놀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봉선화의 꽃말에는 ‘순정’, ‘희생’, ‘조심스러운 사랑’이 포함되어 있어,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듯한 이 꽃의 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겉으로는 소박하고 작아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생명력과 감정을 간직한 모습은, 어쩌면 우리 자신과도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 전설과 민속이 살아 숨 쉬는 꽃, 봉선화
봉선화는 단순한 꽃을 넘어 우리 민속과 전통 문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풍습은 단연 손톱 물들이기입니다. 꽃잎과 잎을 따 백반과 함께 찧어 손톱 위에 올린 후 헝겊으로 감싸 하룻밤 두면 예쁘고 붉은 빛이 듭니다. 아이들은 여름밤 엄마와 함께 손톱에 봉선화를 얹고, 자는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감싸안곤 했습니다.
이때 자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첫눈이 내리기 전까지 봉선화 물이 남아 있으면 그 짝사랑은 이루어진다”는 전설입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봉선화에 물을 들인 손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고,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감정을 품었던 추억이 많은 사람들에게 남아 있지요.
이 전설은 단순히 재미있는 민속놀이가 아니라, 어린 시절의 감정과 순수한 사랑의 표현, 그리고 그 사랑이 이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의 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봉선화는 그렇게 사랑과 바람, 그리고 기다림을 담은 꽃이었습니다.
해외에서도 봉선화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지장화(指甲花)’, 즉 손톱꽃이라 불리며, 여인의 고운 자태와 절개를 상징했고, 인도에서는 제사와 종교 의식에서 신성한 꽃으로 바쳐졌습니다. 또 한방에서는 봉선화 씨앗을 ‘봉선자’라 하여 부기와 염증, 타박상 해소 등에 약재로도 사용했습니다.
3. 현대의 봉선화
현대에 들어서도 봉선화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화려한 장미나 수입 꽃들 틈에서도 봉선화는 소박하지만 당당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특히 베란다 화분이나 작은 텃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꽃이 피는 과정을 지켜보는 가족 단위의 여름 체험 활동으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봉선화는 키우기 쉽고 물만 잘 주면 튼튼하게 자라나며, 꽃도 오래갑니다. 가을에는 열매가 터지며 씨를 떨어뜨리고, 다음 해 다시 싹이 트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에게는 생명의 순환을 알려주고, 어른들에게는 시간의 흐름과 기다림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무엇보다 봉선화는 단순히 보기 좋은 꽃이 아니라, 기억과 정서를 자극하는 감성의 꽃입니다. 붉게 물든 손톱을 보며 웃던 아이의 얼굴, 봉숭아를 가만히 찧던 어머니의 손길, 그리고 첫눈을 기다리며 품었던 순수한 마음까지 모두가 봉선화에 얽힌 추억입니다.
혹시 이 노래를 아실까요?
요즘 젊은분들은 모를수도 있지만 저도 어릴 때 어렴풋 할머니가 불러주셔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봉선화》
작사: 김형준
작곡: 홍난파 (1920년대 작곡)
가사:
붉게 피는 봉선화야
말없이 피었다가
말없이 지는 꽃아
봉선화야 봉선화야
너는 무슨 생각으로
그리 고왔더냐
슬픈 사연 간직하고
붉게만 피었구나
여름날 외할머니댁 마당평상에 앉아 봉선화찧어 손가락에 물들여주시며 불러주셨던 노래였습니다.
그때는 그냥 봉선화에 관한 내용인 줄 알았던 이 노래가 알고보니 일제강점기 시절에 작곡된 애절하고 아름다운 동요로, 단순한 어린이 노래라기보다는 민족 감정과 아련한 추억이 담긴 예술가곡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이 더 깊게 공감하고 기억하는 동요이기도 해요.
올여름, 작은 화분 하나에 봉선화 씨앗을 심어보세요. 꽃이 피고, 손톱에 붉은 물이 스며드는 그 순간, 잊고 지낸 감정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작고 소박한 꽃이, 당신의 하루를 살며시 물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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